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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터뷰 EP16. 끌리는 마음의 방향

와인에서 장보기까지,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시선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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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경험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강혜원 상무

신혼여행을 30분 단위로 계획하던 사람이 어느 날 계획표를 내려놓았다.
홈쇼핑 MD와 경영 컨설턴트, 외식업 경영인과 라이브 바 사장.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던 길을 지나 강혜원 상무가 도착한 곳은 와인이었다.
정확히는 와인 한 잔으로 평범한 식탁을 특별하게 바꾸는 일이었다.
철저한 계획보다 마음이 끌리는 방향을 따르고, 화려한 타이틀보다 살아 있는 경험을 선택해온 사람.
와인을 넘어 우리의 장보기와 일상까지 바꾸고 싶은 그의 다음 이야기를 들어봤다.

Q1. ‘파워 J’, 지금도 계획대로 사시나요?

예전만큼은 아니에요. 당시에는 계획대로 움직여야 마음이 편했어요.
스물다섯 살 무렵에는 앞으로 20년 동안 어떤 경험을 쌓고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미래 이력서’까지 써봤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실제로 그 계획과 비슷한 길을 걸었고요.
그런데 남편과 80일 동안 북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계획을 거의 내려놓아 봤어요.
첫날 숙소만 예약하고, 이후에는 그날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움직였죠.
신혼여행까지 30분 단위로 계획했던 사람이 ‘파워 P’로 거듭난 거예요. (웃음)
계획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지금은 계획에 나를 맞추기보다, 순간순간 마음이 끌리는 방향을 더 유심히 바라봐요.
그동안 쌓은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때로는 계획 밖에서 만난 기회가 삶을 더 흥미로운 곳으로 데려다주더라고요.

Q2. 《신의 물방울》의 애독자로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와인 이야기가 있나요?

“사랑이란 찾는 것이 아니다. 단지 거기에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좋아해요.
와인도, 제가 찾고 싶었던 꿈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만화 속 와인이 궁금해서 하나씩 찾아 마시기 시작했어요.
외국에서 생활할 때는 친구들과 저녁마다 와인을 즐기고 산지를 여행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와인마다 사람과 장소, 그때의 감정이 하나씩 얽히기 시작했죠.
단순히 맛있는 술이 아니라 제 삶의 여러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매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와인은 정답을 공부하듯 접근할 때보다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보다 누구와, 어떤 순간에 마셨는지가 더 오래 남기도 하니까요.

Q3. 회사를 떠났던 순간, 무엇이 타협하지 않을 용기를 줬나요?

CJ푸드빌에서 미국 비비고 레스토랑을 맡았을 때 일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현지 고객의 시선으로 매장을 다시 들여다보고, 복잡했던 메뉴와 주문 과정을 간결하게 바꾸면서 가능성도 확인했고요.
그 경험을 다른 매장까지 확장해보고 싶었죠.
하지만 회사가 제게 기대한 역할과 제가 더 해보고 싶었던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다른 선택지와 타협해 자리를 지킬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나만의 성공을 찾아보겠다’고 결심한 상태였거든요.
그 마음을 외면하면서까지 남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회사를 나온 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린 것은 아니에요.
와인 사업에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웠고, 꽤 긴 시간 웅크려 있기도 했죠.
그래도 그 선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무엇에 진심으로 끌리는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당시에는 돌아가는 길처럼 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 방향을 찾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Q4. 서로 다른 경험을 하나로 잇는 연결고리는 무엇인가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일을 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고객과 공간, 그리고 경험이 있었어요.
홈쇼핑 MD로 일하며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을 배웠고, 컨설턴트로서는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고 해결하는 힘을 길렀어요.
외식업에서는 현장의 작은 변화가 고객 반응과 매출을 어떻게 바꾸는지 직접 경험했고요.
라이브 바를 운영하면서는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간의 의미도 알게 됐어요.
돈만 기준으로 보면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뮤지션들이 편하게 오가는 아지트를 만들겠다는 꿈은 이루었거든요.
보틀벙커를 만들 때는 이 모든 경험이 한꺼번에 필요했어요.
당시에는 흩어진 점처럼 보였던 경험들이 와인이라는 기회를 만나 하나로 연결된 거죠.
결국 중요한 건 이력을 한 줄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각각의 경험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었느냐인 것 같아요.

만난 200명의 고객 중, 가장 오래 남은 목소리는 무엇이었나요?

특정한 한 사람의 답변보다 여러 고객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막막함이 오래 남았어요.
와인을 마셔보고 싶어도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 모르겠고, 매장에 가도 설명이 어렵다는 이야기였죠.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지역과 품종이 중요한 기준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오늘 삼겹살을 먹는데 어떤 와인이 어울리지?”가 더 현실적인 질문이에요.
그래서 초심자에게는 음식과 연결해 쉽고 명확하게 추천하고, 애호가에게는 지역과 품종에 따라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매장을 구성했어요.
설명만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직접 맛볼 수 있는 시음 공간도 만들었고요.
고객 조사는 이미 정해놓은 답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전문가라는 이유로 놓치고 있던 불편함을 발견하는 일이죠.
고객의 언어로 다시 바라보는 순간, 복잡한 문제를 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해요.

Q6. “마트 갈까?”가 데이트 신청처럼 들리게 하려면, 지금의 장보기에서 무엇부터 달라져야 할까요?

마트마다 자신만의 취향과 이야기가 보여야 해요.
간판을 가렸을 때 어느 마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고객에게 장보기는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 이상이 되기 힘들거든요.
프랑스와 미국에서 살 때는 장을 보러 가는 일이 작은 문화생활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LA에서는 농부들이 직접 기른 작물을 판매하는 장을 자주 만났는데, 같은 채소도 누가 어떻게 길렀는지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랐어요.
장을 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죠.
한국에서도 장보기가 단순히 빈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음식과 취향을 발견하는 경험이 됐으면 해요.
고객이 “오늘은 무엇을 사야 하지?”보다 “오늘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
그 변화가 시작되면 마트도 충분히 놀이터이자 데이트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7. 이제는 우리의 어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으신가요?

장보는 시간을 바꾸고 싶어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식탁을 마주하고, 그 식탁을 위해 반복해서 장을 봐요.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죠.
하지만 평범한 밥상에 와인 한 잔을 올리면 저녁의 분위기가 달라져요.
마찬가지로 마트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하거나 나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받는 작은 경험만으로도 일상이 조금 특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틀벙커가 와인의 높은 진입 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자기 취향을 발견하도록 돕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그 경험을 음식과 장보기 전반으로 넓혀보고 싶어요.
특별함은 거창한 이벤트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데서 시작되니까요.

Q8. 2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강혜원 상무님의 클래식은 무엇일까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은 변화’예요.
제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었어요.
평범한 한 끼가 와인 한 잔으로 근사한 저녁이 되는 것처럼, 아주 작은 변화가 사람의 기분과 경험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 있거든요.
앞으로 제가 맡는 일과 직함은 달라질 수 있어요.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로 향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하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설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저만의 클래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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